주현미 - 첫사랑의 화원 (1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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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lished On May 28, 2024

노래 이야기

지금은 여러 오디션을 통해 가수의 꿈을 이루기 위해 도전하고, 가족들도 열렬하게 응원해주는 경우가 많지만, 예전만 해도 가수가 되겠다고 하면 가족들의 반대에 부딪히는 것이 일상다반사였습니다. 그래서, 노래에 대한 꿈을 제대로 펼치지 못하고 가족들의 뜻에 따라 가수가 아닌 다른 직업에 종사하기도 했는데요. 권혜경 선배님도 가수의 꿈을 반대하는 가족들의 뜻에 따라 은행에 입사해서 은행원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했습니다.

권혜경 선배님은 어릴 때부터 노래 재능이 뛰어나서 서울대 음대를 졸업한 재원이었어요. 하지만, 부모님의 만류로 노래 대신 은행원이 될 수밖에 없었죠. ‘은행원’은 남들이 부러워하는 안정적인 직업이었지만, 그래도 노래에 대한 꿈을 결코 포기할 수 없었던 권혜경 선배님은 결국 은행을 그만두고 1955년, 미8군 무대에서 처음 무대에 섰고요. 탄탄한 실력을 바탕으로 1956년에는 서울중앙방송국(KBS 전신)에 제2기 전속가수로 입사하게 됩니다. 그리고, 1957년 ‘산장의 여인’으로 데뷔하는데, 이 노래가 전국적으로 크게 히트하면서 권혜경 선배님은 단숨에 인기가수가 되었고요. 노래의 인기에 힘입어 ‘산장의 여인’이라는 영화까지 만들어집니다.

권혜경 선배님의 가장 큰 매력은 바로 성악을 배운 정통의 목소리라고 할 수 있는데요. 맑고 께끗한 소프라노의 소리를 바탕으로 안정된 발성과 편안하고 대중적인 느낌이 더해진 풍부한 음색이 아름다운 가수가 바로 권혜경 선배님이었습니다. 특히, 곡을 해석하는 능력이 탁월해서 노래의 분위기에 따라 자유자재로 목소리를 정교한 악기처럼 연주했는데요. 이런 권혜경 선배님의 밝고 산뜻한 분위기의 노래가 바로 ‘첫사랑의 화원’입니다.

‘산장의 여인’으로 인기 절정을 달렸던 1958년에 발표된 ‘첫사랑의 화원’은 박춘석 선생님이 작사 작곡한 노래인데요. 박춘석 선생님이 1955년 백일희 선배님의 ‘황혼의 엘레지’로 작곡가 활동을 시작한 지 얼마되지 않아 만든 노래로 박춘석 선생님이 20대 청년의 감성으로 만든 풋풋한 느낌이 가득한 노래가 바로 ‘첫사랑의 화원’입니다. 앨범에는 작사가 ‘백호’라고 표기돼있는데, ‘백호’는 박춘석 선생님이 작사가로 사용했던 예명이고요. 1950년대와 60년대 초 까지는 박춘석 선생님의 작사한 노래마다 ‘박춘석’이라는 이름 대신 ‘백호’ 작사로 발표된 경우가 많았어요.


” 꽃이 핍니다 첫사랑 화원에
새빨간 장미꽃 순백한 릴리꽃
아름답게 피었네
심심산천 바위 틈에
비에 젖어 피는 꽃도
거리서 먼지 쓰며
피어나는 꽃이라도
꽃은 꽃이요

​ 비가 옵니다 첫사랑 화원에
꽃잎에 내리는 가랑비 이슬비
소리없이 고이네
한번 피면 시드는 게
첫사랑의 꽃의 운명
비바람 불어오는
들에 피는 꽃이라도
꽃은 꽃이요

​ 꽃이 집니다 첫사랑 화원에
한숨에 시드는 청순의 꽃잎은
쓸쓸하게 웁니다.
달빛 속에 밤이 드니
떨어지는 꽃이라도
새벽에 이슬 맞아
떨어지는 꽃이라도
꽃은 꽃이요 “


‘첫사랑의 화원’은 첫사랑을 꽃에 비유해서 꽃이 피고, 비를 맞고, 또 꽃이 시드는 과정 속에서 첫사랑의 설렘과 행복함, 그리고 아픔과 그리움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사랑의 꽃이 화사하게 피었다 지고 다시 피는 청춘을 사랑스럽게 노래한 권혜경 선배님의 목소리는 맑고 깨끗했고, 많은 사람들의 가슴을 설레게 만들며 큰 인기를 모았습니다. 그리고, 다른 가수들 역시 이 노래를 사랑해서 하춘화 선배님이 1970년대에 다시 재취입하기도 했고요. 방주연 선배님을 비롯한 여러 가수들이 이 노래를 다시 부르기도 했죠.

‘산장의 여인’부터 ‘동심초’, 그리고 ‘첫사랑의 화원’까지 2년 동안 세 곡이나 히트하면서 권혜경 선배님은 그야말로 1950년대말의 최고 인기가수로 사랑받았는데요. 하지만, 안타깝게도 1959년 심장판막증으로 입원한 후 권혜경 선배님은 끊임없이 찾아오는 병마들과 싸워야했습니다. 결핵과 후두염 등...권혜경 선배님을 괴롭힌 병들이 많았지만, 그래도 권혜경 선배님은 잠시 병세가 호전될 때마다 ‘호반의 벤치’와 같은 명곡들을 취입하고, 전국의 교도소와 소년원을 돌며 재소자들을 위해서 노래로 봉사했고요. 생에 절반 이상 동안 400차례가 넘는 봉사활동을 하면서 1982년에는 세계 인권 선언 기념일에 표창장을 수상합니다.

노래에 대한 사랑으로 가수가 되었고, 병마와 싸우면서도 노래를 통해 아름답게 봉사한 권혜경 선배님은 오랜 투병 끝에 2008년에 하늘의 별이 되었는데요. 권혜경 선배님이 생애 마지막을 보냈던 ‘충북 청원’에서는 권혜경 선배님을 기리기 위해서 2010년에 ‘권혜경 가요제’가 열리기도 했습니다.

사람들은 권혜경 선배님이 노래처럼 살았다고 말합니다. 노래 안에서 꿈을 꾸고, 노래 안에서 사랑하고, 또 노래 안에서 외로운 사람들에게 사랑을 나눠주고 외로움을 보살펴주었던 권혜경 선배님은 꽃처럼 피어나고 지는 모습조차 아름다웠는데요. 권혜경 선배님이 가장 행복했던 순간에 노래한 ‘첫사랑의 화원’, 그 사랑의 향기를 여러분께 전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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